관리 메뉴

삶을 누리는 디비누스

GOP 하강 행군과 종교 행사 본문

군대 스토리

GOP 하강 행군과 종교 행사

케일럽 2018.02.17 05:00

11/2/2014

이제 겨울도 끝인가 보다. 눈이 거의 다 녹았고 날씨도 좋다.

12/2/2014

GOP도 이제 끝이다. 탄약을 마지막으로 인수인계하고 하강 행군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GOP 상황병 근무도 끝난 상태. 이제 전화 받을 일도 없다.

하강 행군이 7km라는 소문도 있고 12km라는 소문도 있는데 19시에 출발해서 00시에 새 부대로 도착했다. 텐트랑 모포를 뺀 가라 군장은 가벼웠지만 행군이 끝나고 발을 확인해 보니 500원짜리 동전 2개 크기의 물집이 생겼다 ㅠㅠ 연변장에 도착하고 대대장이 짧은 연설을 하는데 얼어 죽는지 알았다. 연설이 끝나고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따뜻한 샤워 후에 옷을 갈아입고 라면을 먹으니 그나마 괜찮아졌다. 행군에서 제일 어려운 구간이 소초에서 중대 OP까지 가는 언덕이었다. ㅋㅋ 나머지는 그냥 평지.

13/2/2014

FEBA 부대에 천천히 적응하고 있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우리 분대가 한달 동안 격일로 취사장 청소에 당첨되었다. 나머지 부대 시설은 어떨까? GOP 소초보다는 춥지만 신병 때 사용한 부대보다는 따뜻했다. 체단실에는 가라오케와 위닝도 있었다. 사지방하고 도서실은 아직 가보지 않았다. 저녁 먹고 가봐야지. 3대대에 있던 동기 한명이 우리 소대로 편입되었다.

PX가 건물 안에 있어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어 편하다. 그래도 아직은 GOP가 더 좋은 것 같다. 둘다 장단점이 있겠지.

14/2/2014

페바 부대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GOP에 올라가기 전에 4~5개월 생활하였는데도 모든 것이 새롭다. 내일은 고참들만 서는 당직을 하라고 한다.

15/2/2014

처음으로 당직병을 맡았다. 생각보다 쉽다. 밤에 오는 전화 좀 받고 점호 시간 때 총 인원과 총기 확인/검사하면 된다. 당직병은 15시부터 다음날 09시까지 근무 서고 저녁까지 근무취침한다. 만약 훈련이 있는 날이면 훈련하지 않아 좋다. 하지만 오늘 같이 금요일에 당직이라면 토요일이 날라가는 것. ㅠㅠ 그래도 오늘은 대대 전체가 바뻐서 차라리 근무취침하는게 편하다. 당직병은 그리 피곤하지도 않다. 당직사관이랑 라면도 먹고 놀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중간에 순찰 돌면서 시간을 때울 수도 있다. 부대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순찰은 3~40분 정도 걸렸다.

4월 달에 USO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할 수도 있다. 칵테일을 포함한 만찬과 각종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참가 자격은 영어를 잘하는 특기병이라는데 필자는 GOP에 다녀와서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하면 7박8일 휴가도 준다고 한다. 꼭 뽑히면 좋겠다. 거기다가 참가병 중 한명에게는 1000달러의 장학금을 준다고 한다. 아쉽게도 필자는 학생이 아니라 장학금 신청은 하지 않았다. 총 80명의 병사를 초대할 예정이며 구성 인원은 한국인 병사 39명, 미국인 병사 39명, 그리고 UN 병사 2명이다. 한국인 병사 39명에서 23명은 육군, 해군과 공군에서 각각 8명이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면 대단한 영광일 것이다.

16/2/2014

주일이라 어쩔 수 없이 교회에 갔다. 종교 인원 조사를 하필 자고 있을 때 해서 잠결에 교회를 선택했나 보다. 깨어 있었다면 카톨릭 또는 불교를 선택했을 터. 하지만 절에 가면 전투화를 벗어야 된다고 해서 귀찮다. 다음 주에는 성당에 가야지. 하지만 성당은 멀어서 육공 트럭을 타거나 인원이 없으면 미니버스를 타고 간다.

교회에 다시 가니 여러 생각이 겹친다. 예전에 여친과 해어지고 기도하던 기억. 그러다가 새 여친을 만난 기억. 교회 봉사가 바뻐 여친과 만날 시간이 없어 방송실에서라도 보기 위해 따라 온 여친을 전도사님이 방송실에 오지 말라고 하신다. 흠. 외국인이라 말도 못 알아 듣는데 본당에 가 있을 수도 없고. 규칙대로라면 방송실에 출입 금지인 것은 맞다. 그리고 왜 하필 야한 드라마를 방송실에서 보고 있었던 것인가 ㅠㅠ 근데 어찌겠는가. 회사 끝나고 남는 여가 시간을 거의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6시부터 10시 교회. 토요일과 일요일도 거의 하루 종일 교회. 그래서 교회에서 만나는 것인데. 그다지 선택권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미 믿음으로 봉사하기 보다는 그냥 '일'이 되었다. 사람들도 내 '재능'이 필요했지 '나'를 찾는 것 같지 않았다. 이 것 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물질적인 고난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기적 같은 좋은 일만 일어나도 무릎 꿇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고통과 괴로움으로 무릎 꿇을까나. 그럴 일이 없다. 암튼,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다시는 믿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종교인은 존중해야지. 하지만 존중으로 끝이다.




댓글 0건 | 트랙백 0
댓글 쓰기 폼